지금 학교가 전체 방학중이다.
우리 애들도 방학이라 집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저녁늦게 자고 아침늦게 일어나도 낮에는 딱히 할일이 없는것같다.
그냥 폰보고 티비보고 어슬렁거리다가 하루를 보내는것같다.
문득 우리 어렸을때가 생각난다.
문밖에만 나가면 친구들이 언제든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어도 괜찮았고
또 그런 구애를 받지않고 놀꺼리가 풍부했기때문에
누군가 뭘하지고 하면 바로 그 놀이가 하루놀이가 되는 시기였다.
말뚝밖기.술래잡기 다망구리..등등
편을 나누고 놀이를 하면 된다.
처음에는 살살 한다.
조금씩 성질이난다.
계속지는 친구에게 화도 내고 발이 땅에 닿았니.말이 무릎이 굽었니하면서
한참을 실랑이가 이어진다.
모처럼 내편이 타는 기수가 되면 그때부터는 과격해진다.
집중적으로 약한 한사람에게만 올라타서
일명'짜구'를 낸다.짜구났다라고 한다.
그러면 가위바위보를 하지않고 다시 탄다.
말은 빨리 가위바위보를 하라고 난리고..
기수가 된사람은 어기적어기적거리면서 조금이라도 늦게 가위바위보를 한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하지않고
'제비 쎠...'
이랬는데..알랄가 몰라..
가는돌을 한가득 모은다.
공기놀이를 한다.
한가득 모인 돌을 던져서 다른 돌에 안부딪히면서
많이 먹는자가 이기는 놀이다.
아무짜개도 쓸모없는 돌을 한가득 내쪽으로 오는것만으도
그날은 기분이 만땅좋은 날이다.
뭔가 그친구보다 잘한다는것..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돌 다섯개로하는 공기놀이는 지금도 많이 하지만
돌이 아니고 파는 플라스틱으로 위생적인면을 살렸는데..
흙바닥에 앉아서 하던 아련한 추억은 확실히 덜한 느낌이다.
한참 여자아이가 고무줄 놀이를 하면
고무줄 끊어먹는 재미가 넘 솔솔하다.
어떤 남자애는 여자애보다 고무줄놀이를 더 잘해서
곧잘 같이 어울리는 남자아이도 있었는데..
아마 나도 고무줄 끊는 아이보다 같이 고무줄 놀이를 하던
아이였던것같다.
키높이보다 높이 있는 고무줄을 척척내려서
놀이를 하는걸 보면 어떨때는 경이롭기까지 했지만
여자아이가 고무줄놀이에 빠져있을때
아이스께끼하면서 치마를 들추고 도망가는
남자아이들의 장난기에 눈흘기는 여자아이들의 눈총이
그때는 왜그리 재밌는지..
유독 관심있는 여자아이에게 더 괴롭히던 남자아이의 마음을 지금은 알수도 있을것같다.
친구가 몇명없으면 없는대로
이렇게 비석놀이로 놀이를 한다.
처음이 어렵지 단계를 넘어가다 보면
어느새 왕이되어서 왕노릇하는 비석치기
네모받듯한 돌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했기에
굳이 돈이 없다고 해서 꿀리거나 하지 않아도 됐다.
그때는 그냥 자연에 널린 것이 놀이도구고 재미꺼리였다.
구슬이라도 있는 날은 진짜 땡잡은 날이다.
내 기억속에는 계절마다 이런 구슬이라던지 딱지라던지..
이런게 있었는데..구슬이 있는 계절은 동네방네 구슬치기로
땅바닥에는 구멍이 파져있고 선이 그려져있고 그랬다.
몇개안되는 구슬로 주머니 불룩할정도로 많이 따는 날에는
정말 세상을 다 엊은것같은 날이고
새구슬보다 헌구슬은 더 엊어서 팔기도 해서 돈을 만들기도했었다.
우리때는 돈을 많이 가진 아이보다 구슬을 많이 가진 아이가
대빵이었고 최고였다.
구슬도 조금일도 깨져서 엄지손톱에 올려서 서있으면 구슬의 가치가 없어서
버려야하는 룰이 있었다.
깨진 구슬은 바로 가치상실이었다.그게 젤 안타까운 일이었다.
기억속에는 이런 놀이는 남녀가 같이 하는 놀이로
늦가을에서 겨울에 주로했던 놀이로 기억된다.
나는 이 놀이에 별로 감흥이 없어서 많이 즐기지는 않았지만
여자아이와 함께 놀기에는 이런 놀이가 쉬워서
곧잘했던 기억이난다.
젤 많이 했던 놀이의 하나.
오징어 달구지.
진팀은 오징어 몸통에 있고 이긴팀은 오징어 머리에서 시작된다.
밖을 나가면 외발로 (일명'깽깽이 발') 상대방을 넘어뜨려야 하고
이긴팀은 오징어몸통을 관통하는 순간 두발을 다 사용할수있기때문에
진팀은 무조건 오징어몸통을 관통하지못하도록 막아야했다.
또한 꼬리로 들어와서 오징어머리와 몸통이 만나는 저 삼각형안에
이긴팀이 먼저 발을 닿으면 게임에 이기게 되는 제법
격렬한 놀이였다.
학교를 마치거나 점심시간에 이 놀이를 곧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집에 종이만 있으면 딱지만든다고 훔쳐서 만들었던 기억
공책을 찢어서 딱지만들고 공책사야한다고 거짓말치고
혹시라도 박스라도 있으면 두툼하게 만들어서 한번 내려지면
훌러덩 뒤집어지는 상대방 딱지의 모습에 후련한 기억..
단 신문지로는 딱지를 만들수 없다는 룰도 있었다.
딱지를 빼놓을수가 없다.
돈이 제법 들어가는 당시에는 제법 고급스러운 놀이다.
문방구에 새로운 딱지라도 나오는 날이면 그딱지를 산다고
난리를 부리고
새딱지는 셈을 잡는 역할을 하고 헌딱지는 거래를 하는 용도가
많았다.
딱지야말로 부의 상징으로 딱지가 박스가득한 날은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날이다.
딱지안에는 그 시대의 유행하는 만화영화가 나와서
더 인기가 있었던것같다.
지금도 간간히 딱지가 보이지만 그때의 많은 딱지를 생각하면 그냥 추억거리 정도가
아닐까.
저 박스가득 딱지로 가득한 날은
세상이 나 내것같은 날이다.
돈보다 딱지가 더 좋았던 그때였다.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놀이
주사위놀이
간첩만 잡으면 바로 엘리베이터로 급상승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주사위놀이
겨울이라고 집에만 있을 우리가 아니였지
썰매도 어떤 설매냐에 따라 더 잘나가고 재주도 부리고 했던 시절
다행히 우리동네에는인근에 시내가 있어서
자주 썰매를 타러 갔었던 기억이난다.
살얼음은 도전하고 싶은 구간으로 결국 누군가는 살얼음이 깨져서
옷이 다젖어도 추운줄도 모르고 놀았던 그때..
지금은 시골로 가야 겨우 탈수있는 놀이가 돼버렸다.
지금은 아마 하고싶어도 못할 놀이가 아닐까
쥐불놀이.
헌깡통에 구멍을 뚫어서 나무에 불을피워
저렇게 휘휘 돌리면 불꽃이 피며 예쁜 원형을 만들었던 기억
추우니까 손도 녹이고 불장난도 치고..
정말 추운날은 둥근돌을 저 깡통안에 넣어서
불에 구우면 몇시간이고 따뜻한 기운에 손도 녹이는 좋은
손난로 구실을 했었다.
이렇게 옛날의 놀이에 빠져본다.
지금은 그만큼 즐겁게 놀 공간도 없고 친구도 없고.
어른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남들이 하니까 우리아이도 학원을 보내야하고
폰을 사주어야하고 티비도 봐야하고
그래야 우리아이도 따돌림 받지않으니까..
그때는 따돌림받을 꺼리가 없지않았을까?
그냥 집밖에 나오면 돈이 없어도
편이 모자라서 같이 놀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무줄놀이다 공기놀이다해서
늘 놀꺼리가 풍부했기때문에
그냥 어울리면 되는 그런때였다.
지금은 풍족하고 아쉬울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오히려 많은 친구들과 경쟁을 해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생기는것을 보면
물질만능주의에 너무 내몰리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잘 자라주는 우리 아이가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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