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내가 국민학교 4학년되던때
정말 지금생각하면 순진하고 세상을 하나도 모를것같은
선생님이 담임으로 오셨다.
지금 기억으로도 그때의 선생님을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선생님의 사명을 가지고 첫 부임하고 담임을
맡았던 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맞을것같았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을 시작되었다.
내나이가 그때 11살..
선생님의 나이도 얼마되지않은 그야말고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좋았다.
우리 어렸을때는 도시락을 안싸오는 학생도 많았던 시기였고
가난한 애들도 많았던 시기였다.
도시락을 싸와서 같이 학생들과 나눠먹는것은 일상이었고
도시락을 안싸온 학생들에게는
당신의 도시락을 흔쾌히 내놓시는 선생님이셨다.
한번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단체를 벌을 세운적이 있었다.
다 책상밑에서 무릎꿇고 손들고 한참을 있는 벌이었던것같은데..
선생님이 그 벌을 세우시고
당신도 우리와 똑같은 벌을 서고 계신것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그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천사같았다.
우리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나지 않고
학교가 나뉘면서 학생도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학교가 바뀌면서 5,6학년을 지금 졸업한 학교로
가게되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6학년때 담임으로 오면서
다시 이어졌다.
그래서 난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이 다섯분밖에 되지 않는다.
6학년담임선생님을 맏으면서보니
제법 노련미가 많이 붙은듯했다.
4학년을 맡고 작년에 1학년을 맡고
다시 6학년을 맡으면서 나와의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마 이때가 나의 국민학교 학창시절은 전성기가 아니였을까?
60명이 넘는 학급에서
선생님은 지금은 일반화되어있는 책상배열부터가 달랐다.
6명씩 한조로 책상을 붙여 학습의 효율을 높였고
학생들의 자율권을 적극적으로 허용해주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게..
만화책을 유난히 좋아하는 방광섭이 있었는데..
일기도 만화로 그릴정도로 만화도 잘그리고..
만화책을 학교에 가져오면 안되는데..
물론 수업시간에는 안됐지만
만화책을 선생님이 빌려서 읽고 돌려줄 정도로
강압적이지않고 학생들과의 소통을 좋아했었다.
어린이날 6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일일히 편지를 적어서
연필두개와 함께 나눠주던일..
졸업하던날..
조그마한 야광인형을 모든학생에게 나눠주면서
눈물을 또 얼마나 흘리던지..
이런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같이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얼마있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지만
선생님과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결혼식날도 우리가 선생님의 최초졸업생인 관계로
흔쾌히 참석해서 축하해 주었었다.
이렇게 멀리 있어도 제자들의 안부를 늘 묻고
소통을 좋아했던 선생님..
40년가까이 이어져 오늘도 이렇게 서로
문자를 보내고 서로 격려하고 있다.
얼마전 내가 다쳤을때 멀리 대전에서
친히 내려와서 내몸을 살피시던 기억도 나고.
내가 단체문자로도 보내는날은
반드시 답장을 보내서 나에게 용기를 주시는 선생님..
아직도 소녀같은 마음을 가진 천성이 너무 착하신 선생님..
몇년전에 조기퇴임을 하셨단다.
요즘 애들이 옛날의 애들과 달라서
선생님노릇도 못하겠다고 하시면서
퇴직하시고 제자도 찾아다니고
가족과 여행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시면서
보내시고 계신다고한다.
인생을 살면서 나처럼 행복한 놈도 있을까?
같이 나이들어가는것도 즐겁지만
아직도 이나이에 선생님과 옛추억을 얘기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살아가는게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이래서 나는 행복한 놈이다.
이여옥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같이 행복해요..
고맙습니다.